장르의 변주
공간의 재구성
기존 건물은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현대 주거사에서 하나의 도시주거의 유형으로 자리매김한 다세대∙ 다가구 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빛 바랜 벽돌 외벽과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실외기, 정리되지 않은 전선과 배수관. 이런 요소들은 주변의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 오피스 건물과 대조를 이루며 건물의 이미지를 더 낡고 칙칙하게 만들었다. 클라이언트는 작가와 출판사를 운영하는 젊은 부부이다. 작업실을 겸한 임대 건물을 구상했던 두 사람은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외관 때문에 건축가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임대를 위한 기본조건을 갖추는 것이 계획 단계에서 디자인에 버금갈 만큼 중요했다. 예산과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에, 최소의 변경으로 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임대를 위한 공간은 특정 기능을 소화하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공간 구조를 만들어야 했고, 이전의 주거공간을 구성하던 비내력 벽체와 시간이 흐르면서 누적된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내 뚜렷한 기능이 부여되지 않으면서도, 또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이 가능 하도록 평면을 구성하고자 했다. 계단실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기존 다세대 주택의 평면구조는 가장 큰 제한 요소였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계단실, 화장실 등 공용공간을 중심에 두고 대칭되는 두 개의 전용공간을 구성하여 임대방식에 따라 두 개의 공간, 혹은 하나의 공간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의 중심축에 배치된 계단실과 화장실 사이의 유휴공간을 비워냄을 통해 건물을 수직적으로 관통하는 작은 중정을 계획하여 이용자가 체감하는 공용공간의 용적을 극대화시키고자 했다. 계단과 연계된 중정은 입주민들간의 시선적 교감과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하는 동시에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점에서 공공성과 폐쇄성 사이의 균형감을 형성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중간영역으로서의 공용공간
네 개의 단위세대로 나눠졌던 각 층의 주거 공간을 두 개의 임대공간으로 통합하자, 계단과 홀 등 공용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낮은 층고 탓에 어둡고 칙칙한 느낌이었던 공용공간을 새로운 건축 요소로 채우기 보다는 비움으로써 느슨하면서도 밝은 경계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렇게 생긴 빈 공간은, 각 임대 공간의 동선을 구분할 뿐 아니라 공용 공간에서 시선의 교류를 이끌며 공간 사이의 관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한다. 또한 내외부공간을 부드럽게 연결하면서 동시에 구분짓는 완충 공간으로서의 중간 영역을 형성한다.
임대용 건물에서 계단실은 각 공간을 연결하는 주된 동선이자 유일한 공용공간이다. 이 공간을 수직적, 입체적으로 변형하여 협소한 내부 공용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지하1층부터 지상3층까지 연결되는 계단의 위치와 폭에 변화를 주고, 일부 슬래브를 오픈하여 개방감을 부여하며, 이동∙휴식∙전시 등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아트리움은 계단실, 각 임대 공간 실내공간, 그리고 창문 너머의 외부 공간까지 아우르며 시각적 확장을 유도한다. 출입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전개되는 하늘, 날씨와 시간의 변화를 빛과 그림자, 소리와 울림을 통해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는 감각적 틈을 연출하고자 했다. 수직∙수평적으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시선과 입체적 공간의 시퀀스는 작은 면적에서도 공간을 풍부하게 경험하고 내외부의 경계에 있는 '중간 영역'의 다의성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낸다.

담담한 입면의 리듬감
도로 경계선까지 꽉 채운 기존 건물의 외벽면은 외부와의 적극적이고 직접 연결되는 부분임에도 강한 경계로만 작동하고 있었다. 1층의 출입문과 벽면 일부를 셋백(setback)하여 출입구를 좀 더 넓게 구성하면서 다소 밋밋해질 수 있는 입면의 조형성을 고려했다. 뒤로 물러난 주 출입구는 건축물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여 거리와 소통할 여지를 주고, 작은 선큰 공간을 만들어 지하에 빛이 흐르도록 할 뿐만 아니라, 내부로 이어지는 계단실과 중정으로 시선을 확장시켜 공용 공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렇게 비워진 내부공간과 연결되는 진입공간은 입면과의 개연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도로에 면한 유일한 입면인 서측 파사드는 대부분 닫힌 형태로, 서향의 빛을 거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정제된 오프닝을 통해 단아하고 고요한 표정을 드러낸다. 남측과 북측 입면은 채광과 환기 등 기능에 충실하도록 계획했다. 차분한 베이지 톤의 벽돌타일로 묵직하게 닫힌 서측 입면의 (위로 갈수록 개수가 줄어드는) 개구부는 규칙적인 패턴을 이루는 남측과 북측입면의 개구부와 어우러져 리듬감을 더한다. 혼잡한 도심의 빌딩들 사이에서, 화려함보다 수수함으로 새로운 풍경을 드러내고자 했다.

Project : A Building (청담동 A 빌딩)
Type : Renovation
Architect : ODETO.A (주)건축사사무소 오드투에이
                 Eunju Jeong & Heewon Lee (정은주, 이희원)
Design Team : Taewoo Kim, Dahye An (김태우, 안다혜)
Photos :  Kyungsub Shin (신경섭) + ODETO.A (주)건축사사무소 오드투에이